우연히 읽은 기사인데... 같은 업계인데다~ 너무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우선 이곳에 발췌해서 올립니다.
2006년 3월에 쓰인 기사인데 아직도 너무 공감이 가서 다른곳에 갈무리 해두었다가 이곳에 올립니다.
1970년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UC 버클리 기숙사를 돌며 ‘블루 박스(blue box)’를 방문판매했다. 블루 박스는 전화 네트워크를 조금 고쳐 장거리 전화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전자 장치다.
그러나 IT 업계에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그 두 사람이 방문판매를 그만두고 컴퓨터 개발에 매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로 설립 30돌을 맞는 애플컴퓨터는 조그마한 벤처기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아이팟 디지털 뮤직 플레이어라는 ‘문화 아이콘’을 탄생시킨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MS의 마하(Mach) 커널(맥 OS X에 대한 오픈소스 코어 제공) R&D를 총괄하는 릭 래쉬드는 “IT 업계는 근본적으로 변화를 요구한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어떤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는 분야가 바로 IT다. 30년 동안이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기업들은 일반적인 비즈니스 법칙이 아니라 예외적인 기업들이다. 이런 기업들은 축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애플은 코카콜라, 페덱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탄탄한 브랜드 인지도를 구축했으며, 지난해에는 연매출 130억 9300만 달러에 순익 13억 400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매출을 올렸다.
한때 추락 기로에 섰던 애플
그러나 이같은 성공 신화에 가려 애플이 그동안 겪었던 숱한 고난의 역사는 종종 잊혀진다. 애플은 지난 1990년대, 최고의 IT 기업에서 한없이 밑으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MS가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난투극도 끊이지 않았다. 또 잡스와 워즈니악은 컴팩 컴퓨터와 IBM 등 PC 업체들이 업계 선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같은 역사를 언급하지 않고는 현재 애플이 구가하고 있는 르네상스의 창출 과정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HP에 인수돼 지금은 브랜드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컴팩이나 PC 사업에서 손을 뗀 IBM과 달리 애플은 현재 최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아이팟은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확고히 자리를 굳혔다. 일부에서는 믿기 어렵다고까지 주장하는 일들까지도 척척 해내고 있다. MS가 윈도우를 업데이트하는 것보다 더 간단한 방법으로 자사의 대표 브랜드인 매킨토시 OS를 업데이트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애플이 비즈니스 측면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잡스와 애플은 과거의 경험을 한데 버무려 새로운 다른 것들을 창출하고 있다.
애플은 컴퓨터를 개발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1977년 4월 애플II를 출시하면서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사용하고 싶어하는 시스템을 최초로 선보였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애플II가 스타 제품으로 군림하는 동안에도 몇 가지 후속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개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같은 산고를 거쳐 나온 제품이 바로 기업 시장을 겨냥한 리자(Lisa)와 리자의 일반 소비자 버전인 매킨토시다. 버드 트리블, 앤디 허츠펠트, 빌 애킨슨, 제프 라스킨 등으로 구성된 팀은 미래를 바꿔놓은 이 프로젝트에 전념하기 위해 애플 본사가 아닌 다른 빌딩에서 개발을 추진했다.
스티브 잡스는 지난 1981년 2월 허츠펠드를 애플II 그룹에서 맥 사업부로 전진배치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누가 애플II를 신경이나 쓰고 있나?” 그리고 심지어는 허츠펠드가 새로운 운영시스템과 관련해 그동안 작업했던 성과들조차도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맥 초기 시절에 대해 허츠펠드가 집필한 ‘실리콘밸리의 혁명 : 맥 탄생에 관한 기가 막힌 성공신화(Revolution in the Valley: The Insanely Great Story of How the Mac Was Made)’에 따르면, 잡스는 “매킨토시는 애플의 미래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부터 이 일을 시작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탄탄한 매니아 층 가진 ‘컬트 오브 맥’
애플은 맥과 함께 마우스, 그래픽 인터페이스, 레이저 프린터 등 맥 주변기기의 혁신도 이끌었으며, 일반 대중들이 이런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소형 9인치 흑백 스크린과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장착한 앙증맞은 맥은 거침없는 속도로 신속하게 매니아 군단을 만들어냈다. 이는 ‘컬트 오브 맥(Cult of Mac)’으로 잘 알려져 있다.
와이어드 뉴스의 ‘컬트 오브 맥’ 칼럼리스트이자 동명의 서적까지 출간한 린더 카니는 “컬트 오브 맥은 마케팅 전략에서 의도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IBM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이들은 자신들을 차별화하기 위해 언제나 맥을 ‘반체제 문화’로 묘사했다. 즉 맥이 거대 기업과 거대 정부에 대한 그들의 대안이었던 셈”이라고 밝혔다.
물론 애플 매니아들은 이런 마케팅적 시각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카니는 “이들에게 맥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저 세계 최고의 컴퓨터일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맥 매니아 군단이 활성화되고 있었지만 맥 탄생의 주역인 애플은 언제나 고독한 나날을 보냈다.
애플, 적어도 잡스가 주도했던 애플은 신제품에 대해 철저한 비밀을 유지하며, 고생스런 개발 작업을 꾸준히 이어갔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내부에서 처리하고, 차기 제품에 대해서는 언제나 준비가 끝난 단계에서야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나서는 또다시 자신만의 은둔세계로 돌아갔다.
수년 동안 애플은 OS와 관련한 라이선싱 문제에도 시달렸지만 이에 대한 결론은 언제나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이었다.
또 몇 년에 걸쳐 수많은 주목할 만한 파트너십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런 파트너십은 대부분 처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애플은 초창기에 자사 OS를 파워컴퓨팅(Power Computing)과 유맥스(Umax)에 라이선스로 제공했으며, IBM과는 칩 동맹을,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HP 및 모토로라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은 별다른 결실을 맺지 못했다.
애플에 쏟아지는 지금과 같은 찬사는 애플이 중반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 애플은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으며, 좌초 위기에 빠진 애플을 구하기 위해 전투태세를 갖춘 CEO 마이클 스핀들러가 전진 배치됐다.
‘대담함-모험정신-심미안’이 성공의 밑거름
새로운 CEO와 함께 애플은 재기를 위해 다양한 분야로 눈을 돌렸다. 장-루이 가세의 Be(Jean-Louis Gasse's Be)도 거의 인수 직전까지 갔지만 가세가 제시한 금액이 너무 높았다.
그리고 나서 최종적으로 나온 결정이 잡스가 설립한 넥스트 컴퓨터(Next Computer)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잡스는 초기에는 자문 역할만 하는 조건으로 애플에 복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애플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임시직으로, 그리고 나중에 CEO로 선임됐다.
이같은 변화는 애플에게나 잡스에게나 모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IT 업계에는 앵콜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잡스는 자신이 추천했던 前 펩시 임원 존 스컬리에 의해 지난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 후 다시 돌아오면서 재기의 기회를 갖게 됐다.
물론 수많은 다른 사람들도 애플의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기여를 했지만 허츠펠드는 잡스가 지금과 같은 평가를 얻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잡스가 없었다면 애플도 그저 그런 평범한 회사에 불과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대담하지도, 모험적이지도, 그리고 심미안적 능력도 없는 그런 회사 말이다”고 밝혔다.
물론 애플이 범한 중대 실책도 몇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뉴튼 OS와 잡스 II 시대의 파워맥 G4 큐브다. 그러나 애플은 최근 몇 년 동안 최대의 승부수를 띄웠던 사업이 성공하면서 그동안의 실패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잡스가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시된 아이맥은 애플이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고, 애플 제품에 대한 흥미를 다시 유발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애플은 또 캔디 컬러를 채택한 아이맥에 이어 최대 승부처라고도 할 수 있는 OS X(전혀 새로운 유닉스 기반 OS)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러나 OS X는 개발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으며, 즉각적인 성공을 가져다주지도 않았다.
이같은 변신 노력은 애플이 디자인 리더로서의 명성과 언제나 트렌드에 민감한 제품을 선보인다는 과거의 찬사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됐다. 물론 애플 II 시대에 만끽했던 선두 업체로서의 시장점유율을 다시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MS도 부러워하는 아이팟 마케팅
OS 9에서 OS X로의 전환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이를 통해 애플은 결국 MS가 윈도우 XP 후속버전을 개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안에도 무려 네 차례나 업데이트 버전을 내놓을 수 있었다. MS가 윈도우 비스타 출시를 또다시 연기한다고 발표했던 지난주 이같은 애플의 전략은 더욱 빛나 보였다. 일부에서는 윈도우 비스타가 맥 OS X에서 채택한 아이디어에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힘들기는 했지만 애플의 OS 전환 과정은 또 다른 상업적 성공, 즉 아이팟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애플이 최근 들어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미래 사업인 음악은 원래 애플이 선도했던 분야가 아니다. 초기 하이엔드 아이맥은 CD 버너가 아니라 DVD 플레잉 드라이버를 장착한 제품이었다.
그러나 애플은 음악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부터 전력을 다해 몰입하기 시작했다. 애플이 처음 선보인 서비스는 컴퓨터에서 음악을 재생하고 즐기는 방법을 대폭 단순화한 아이튠이었다. 그리고 나서 MS가 윈도우 XP를 출시하던 때인 2001년 10월에 아이팟을 공개했다. 아이팟은 최초의 디지털 뮤직 플레이어도 아니었고, 단순한 하드 드라이브에 불과했다. 그러나 경쟁업체에 비해 더 작아진 사이즈와 사용하기 편한 스크롤휠 인터페이스는 다른 업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던 시장에서 애플에 성공을 가져다준 기폭제가 됐다.
아이팟은 출시되자마자 폭발적인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애플이 윈도우 버전과 뒤이어 곧바로 선보인 아이튠 윈도우 버전을 추가하기 전까지는 킬러 비즈니스로 성장하지 못했다. 아이튠 윈도우 버전은 ‘Hell Froze Over’라는 거대한 포스터와 함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제품이다.
유통 시장 진입으로 확대 시도
또다른 애플의 과감한 방향 전환은 지난 2001년의 유통 시장 진입이다. 게이트웨이가 교외 쇼핑센터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었기 때문에 애플이 게이트웨이를 대신해 고급 쇼핑몰의 최우수 매장 공간을 확보했다.
엄청난 비용이 들었지만 애플 스토어는 새로운 고객들에게 애플 브랜드를 노출시킬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으며, 맥 추종자들에게는 회합 장소로 역할했다. 카니는 이런 아울렛 덕에 공식적으로 1년에 두 번 열리는 맥월드 엑스포에서나 볼 수 있었던 컬트 오브 맥을 각 지역에서도 꾸준히 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애플 매장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근사하게 디자인된 애플 매장에는 실질적인 구매자들, 지니어스 바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사용자들, 그리고 맥 매니아들을 찾기 위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애플 고정팬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있다”고 소개했다.
애플 매장은 또 끊임없이 진화하는 아이튠 뮤직 스토어와 아이팟에 대해서도 훌륭한 전시공간으로 역할한다. 지난해 쇼핑 시즌에는 아이팟 나노와 비디오 아이팟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에게 핸드헬드 컴퓨터를 제공하기 위해 특별 직원을 배치하기도 했다.
애플의 운명이 어떻게 극적으로 변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애플이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면서 애플 음악 사업이 반독점 주창자들의 표적이 된 것이다.
음악 분야에서 애플의 비즈니스 원칙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아이팟에서 보호받는 음악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거나 아이튠에서 구매한 음악을 다른 디바이스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플의 복사 보호 기술을 라이선스하라는 요청을 애플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몇 가지 소소한 법적 분쟁이 진행 중이지만 음악 시장을 개방하기 위한 입법 활동이 추진되고 있다.
허츠펠드는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애플이 실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디지털 음악 업계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미디어에 대해 보편적인 표준을 요구한다. 그리고 애플만이 라이선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페어플레이(FairPlay)가 확실한 대안이다. 자신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에게 콘텐츠를 꼭꼭 숨겨두라고 하고, 인위적으로 선택을 제한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정책이 오래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애플이 결국에는 이같은 방식을 수정하겠지만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애플을 살린 스티브 잡스, 찰떡궁합 신화 창조
한편 아이팟은 기업 군단들이 무려 10억 달러에 달하는 시장을 창출하고 있는 애드온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단초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플도 자체 제작한 액세서리로 이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아이팟 기어를 개발하는 다른 기업들로부터 로열티를 챙기려 하고 있다. 대부분의 액세서리 제조업체들은 아이팟으로 인해 행복했던 순간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제품을 다양화하면서 다른 업체들에 대한 제품 생산에도 나서고 있다.
또한 아이팟이 계속 시장을 선점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애플 경쟁업체들이 다음 기술 단계에서 애플의 독주를 저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음악이 휴대폰이나 다른 종류의 핸드헬드 디바이스, 혹은 엔터테인먼트 디바이스와 더욱 긴밀하게 결합됨에 따라 애플 경쟁업체들도 잠재적인 시장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뮤직 플레이어 시장에서 애플의 시장 지배력이 막강해 보인다.
외부의 관심은 대부분 아이팟과 아이튠에 쏠려 있지만 애플은 맥이 차세대 제품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또다시 맥 수정 작업을 하고 있다. 잡스는 지난해 맥을 인텔 칩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하면서 이같은 전환이 현재 사용 중인 칩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차세대 맥 개발에 필요한 몇 가지 기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잡스는 이번에도 새롭게 개발할 기능에 대해 몇 가지 힌트를 제공했다.
일반 대중들의 눈에 비친 애플과 잡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리고 잡스가 없는 애플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지난 2004년 잡스가 암에 걸렸을 때 일부에서 둘의 관계를 단절하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얼토당토 않은 소리일 수 있겠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애플 CEO가 결국 디즈니를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거물 디즈니가 잡스가 소유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잡스가 없는 애플이라? 한 차례 그런 적은 있지만 맥 매니아들은 그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기를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원문 출처:
http://www.zdnet.co.kr/news/enterprise/etc/0,39031164,39146052,00.htm